이명우(李命羽)ㆍ권성(權姓) 부부의 자결순국
지금까지 베일에 가려있던 이명우(李命羽) 부부가 그 실체를 드러냈다. 그동안 이명우 부부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었던 사실은 안동 출신이며, 1920년 12월 부부가 함께 독을 마시고, 자결 순국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를 뒷받침할 만한 자료가 없어 먼 기억 속에 묻어둘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2009년 1월 이명우의 손자 이일환(대구시 동구 불로동)과 그가 소장하고 있던 자료가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안동독립운동기념관(관장 김희곤)은 3ㆍ1만세운동 90주년을 맞아 이들 부부의 자료를 공개하고자 한다.
2월 25일 오후 3시 독립운동기념관에서 후손이 직접와서 원본자료 제공 및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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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자 이일환 |
이듬해 1895년 명성왕후가 시해를 당하자 나라 일을 애통하게 여겼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그는 문을 닫고 칩거에 들어갔다. 1910년 끝내 나라가 망하자 근심과 분노로 그의 건강은 더욱 쇠약해졌다. 이때 그는 이미 목숨을 끊어 일제의 침략에 항거하려는 뜻을 품었으나 아직 부모가 살아있어 그 뜻을 잠시 접어두었다. 1912년 봄, 그는 가족을 이끌고 속리산 갈평리(葛坪里: 충북 보은군 마로면)로 이거하였다. 이곳에서 부친이 돌아가시면서 남긴 유언에 따라 충남 대덕군(大德郡) 진령면(鎭岺面) 송정동(松亭洞)으로 다시 거처를 옮겼다.
1918년 10월 모친상에 이어 두 달 만인 12월에 광무황제가 붕어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이명우는 서쪽을 향해 통곡하고, 머리를 풀고 미음을 먹으며 상을 치르고 아침ㆍ저녁으로 망곡(望哭)하며 세월을 보냈다. 그러다가 상기(喪期)가 끝나는 날에 이르자 자결의 결단을 내렸다. 1920년 12월 20일(음력) 저녁, 이명우와 권성 부부는 자식들을 물리치고, 독을 마시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자식들이 가서보니 이미 순절한 상태였고, 이들의 머리맡에는 약 사발이 놓여있었다. 이명우는 자결하면서 비통사(悲痛辭)와 경고(警告), 유계(遺戒)를 남겼다. 그가 남긴 글에는 나라를 잃고 10여 년 동안 분통함과 부끄러움을 참았으나 이제는 충의(忠義)의 길을 가겠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명우가 가는 길이 ‘忠義의 길’이었다면 그의 부인 권성의 길은 忠義를 행하는 지아비에 대한 ‘의부義婦’의 길이었다. 권성은 남편을 따라가며 네 통의 한글유서를 남겼다. 이 유서 가운데 아들 삼형제와 두 며느리에게 보내는 유서에는 ‘충의의 길’을 따르는 남편을 따라 가겠다는 간곡함이 담겨있다. 임금과 신하사이에 의리가 있듯이 부부사이에도 의리가 있으니 자신은 ‘義婦의 길’을 가겠다는 것이다.
안동독립운동기념관 관장(김희곤)은 이번 자료가 공개되면서 이명우 부부의 자결순국이 갖는 독립운동사적 의의를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첫째, 이는 나라를 잃고 부부가 함께 자결순국한 유일한 사례라는 점이다. 둘째,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 권성은 일제강점기 자결순국한 유일한 여성이라는 점이다. 셋째, 여성이 한글 유서를 남긴 사례 또한 흔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독립운동사 뿐만 아니라 국문학적 자료로도 상당한 가치가 있다. 넷째, 안동은 일제강점기 10명의 자결순국자를 배출하였는데 류도발ㆍ류신영과 같이 부자(父子)가 자결한 사례에 이어 부부가 함께 자결한 사례가 발굴되었는데 이는 안동인의 특성 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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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독립운동기념관 자결순국 부부 애국지사 후손 인터뷰"
■ 殉國 夫婦 愛國志士 현황
ㆍ 성 명 : 이명우(李命雨, 1872~1920)
※ 婦人, 봉화 닭실마을 權 姓(1868~1920)
ㆍ 본 관 : 진성이씨, 퇴계 이황의 14세손
ㆍ 출생지 : 예안면 부포리 출생
ㆍ 후 손 : 이일환(이명우의 손자, 대구시 동구 불로동 거주)
■ 資料 및 인터뷰 內容
ㆍ 일 시 : 2009. 2.25(수) 15:00
ㆍ 장 소 : 안동독립운동기념관
ㆍ 인터뷰 : YTN, MBC 등 (기타 언론사 보도자료 제공)
ㆍ 자료제공 : 이일환씨가 소장하고 있는 원본 한글 유서 제공 예정
ㆍ 내 용
-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애통하고 분노하여 병환이 있었다함
- 1912년 속리산 아래(충북 보은군 마로면)로 移居, 부친상 당함
- 1918년 모친상, 고종 황제의 붕어
- 1920년 12월 19일, 고종황제의 종상(終喪)되자 부부가 음독 자결함
■ 夫婦 自決殉國의 意義
ㆍ 전국 70여명의 순국 애국지사 중 부부 자결 순국은 유일한 사례
ㆍ 일제강점기에 전국 유일의 여성 자결 순국
ㆍ 여성이 한글 유서를 남긴 사례
※ 안동지역에서는 자결 순국자 10명에 2분의 부부가 포함되어 있으나
지금까지 관련 자료가 없어서 애국지사 포상에서 누락되었음
※ 금번 권씨 부인의 한글유서를 발견하게 되어 포상신청을 하게 됨.
■ 기타 문의 및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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